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31일 약 4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현재 0∼0.1%에서 0.25% 정도로 인상한 것은 물가 상승률 목표치 2%를 달성해 물가와 임금이 모두 오르는 경제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은행은 금리 인상 뒤 발표한 성명문에서 물가 2% 목표의 지속적·안정적 실현 관점에서 “금융완화 정도를 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경제·물가 추이가 전망대로 진행된다면 “계속 정책금리(기준금리)를 올리고 금융완화 정도를 조정할 것”이라며 추가 인상 가능성도 시사했다.
교도통신은 “일본은행이 금리 추가 인상을 결정한 것은 2%의 물가 안정 목표에 가까워졌다는 자신감이 커졌기 때문”이라면서 “금리 인상 폭이 작으면 경기를 과도하게 식힐 우려도 작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거품(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상황에 빠졌다.
물가 하락으로 경기가 침체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일본은행 목표는 2% 물가를 지속적·안정적으로 실현하는 것이었다.
일본은행은 이를 위한 수단으로 2016년 1월 기준금리를 -0.1%로 낮추고 상장지수펀드(ETF)까지 매입하는 질적·양적 완화 정책을 도입했다.
이후 물가가 오르고 임금도 함께 오르면서 경제가 서서히 디플레이션 늪에서 빠져나오면서 일본은행의 금융정책도 정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본은행은 지난 3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에 금리를 0∼0.1%로 인상하면서 2016년 도입했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8년 만에 마무리했다.
이어 이날 4개월 만에 다시 기준금리를 현재 0∼0.1%에서 0.25% 정도로 인상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이 일부 시장 전문가들 예상보다 빠르게 이달 추가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낸 것은 물가 상승률 등 지표가 견조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신선식품 제외 기준)은 올해 들어 줄곧 2.0%를 웃돌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2.6% 올랐다.
일본은행은 이날 발표한 경제전망 수정보고서에서 2024년도(2024년 4월∼2025년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2.5%로 지난 4월 발표한 기존 전망(2.8%)보다 0.3%포인트 내렸다.
임금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집계 결과 올해 봄철 임금 협상인 춘투(春鬪)를 통한 평균 임금 인상률은 5.1%로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일본은행은 임금 상승세가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도 확산하고 있으며 인건비와 원재료비 상승분을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에 전가하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공영방송 NHK는 “일본은행이 목표로 해 온 물가 목표는 물가와 임금이 모두 상승해 경제의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 형태”라면서 “임금 상승의 움직임이 확산해 드디어 목표 실현에 가까워졌다고 판단했다”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임금 인상을 웃도는 물가 상승으로 일본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지난 5월까지 26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어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고물가로 침체한 개인소비가 회복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 올가을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물가와 임금 상승에 더해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세와 주민세 ‘정액 감세’ 효과로 기준금리를 인상해도 개인 소비가 크게 줄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또 다른 이유는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엔화 약세를 시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인 엔화 약세로 수입 물가가 치솟으면서 일본 정부와 여당에서는 일본은행에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졌다.
차기 총리 후보군에 포함된 집권 자민당의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은 지난 22일 강연에서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은행에 대해 “단계적인 금리 인상 검토를 포함해 금융정책을 정상화할 방침을 더욱 명확히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또 한 명의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노 다로 디지털상도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환율은 일본에 문제이고 엔화는 너무 저렴하다”며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했다.
엔화 약세로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 물가가 일본은행 예상보다 더 올라 개인 소비를 얼어붙게 할 위험이 있다는 목소리가 일본은행 내에서도 나왔다.
엔/달러 환율은 이달 상순 1986년 12월 이후 37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달러당 161.9엔까지 상승했다.
이후 유력 정치인 등의 엔화 약세 견제 발언이 나오면서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하락하기 시작했다.
엔/달러 환율은 일본은행의 이날 금리 인상 결과 발표 직후인 오후 1시께 151.5엔대까지 떨어진 뒤 상승해 오후 3시께 152엔대 후반에서 거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