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2일

美조선소, 최첨단·효율성 ‘K-조선’ 접목해 탈바꿈 중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최대 도시 필라델피아를 가로지르는 스쿨킬강과, 펜실베이니아주·델라웨어주의 경계인 델라웨어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Hanwha Philly Shipyard).

섭씨 35도의 무더위 속에 선박 건조 작업이 이뤄지는 길이 330m, 폭 45m의 4번 독(dock)에는 주황색 바탕에 한화의 심볼 마크와 영문명 ‘Hanwha’ 글씨가 흰색으로 선명하게 새겨진 660t급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이 설치돼 있었다.

독 중간을 ‘인터미디에이트 게이트’로 막아 물을 차단한 공간에서는 선체 블록을 조립하는 선박 건조가 이뤄지고 있었다.

또 물이 채워진 이 독의 나머지 공간에서는 초록색 바탕 선미에 ‘ACADIA’라고 쓰인 1만t급 정도의 해양 풍력발전 건설에 쓰이는 ‘해저 암석 설치선'(SRIV·Subsea Rock Installation Vessel)이 서서히 미끄러지며 강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날은 한화그룹이 지난해 12월에 이 조선소를 인수한 뒤 처음으로 한국 특파원단을 초청해 미디어데이 행사를 연 날이자, 기본 건조를 마친 SRIV를 물에 띄우는 ‘진수'(進水)가 이뤄지는 날이었다.

현장 안내를 진행한 이종무 조선소장은 “지금 배가 강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게 1년에 한 번 있는 일”이라며 “강이지만 하류여서 조수간만차가 있고, 그 차이가 가장 작을 때를 골라야 하는데 바로 지금이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조선소를 인수했을 때 이 배의 진수를 올해 12월에 하겠다고 하더라. 저희가 5개월을 당겨서 7월에 할 수 있다고 했더니 기존 매니저들이 저를 이상한 놈이라는 듯 쳐다보며 ‘불가능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국인 생산 관리자 32명을 포함해 밤낮으로 일을 해서 달성했다. 조선소 운영 관점에서 보면 오늘은 아주 역사적인 날이다. 이 배는 우리의 노력이 정말 흠뻑 들어가 있는 배”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4번 독 옆 5번 독에는 이미 진수를 마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National Security Multi-mission Vessel)의 의장(艤裝·배에 필요한 모든 선구나 기계를 설치하는 일)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 배는 한화그룹이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뒤 첫 번째로 진수한 것으로, 미 교통부 산하 해사청(MARAD)이 발주했다. 평소에는 해군사관생도 1천명 정도를 태우고 선박 운항 교육용으로 쓰이다 재난이나 전시에는 병원선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이 조선소의 수주 잔고는 이날 취재진이 직접 본 2척의 대형 선박을 포함해 총 7척(NSMV 3척, 컨테이너선 3척, SRIV 1척)이다.

한화오션(지분율 40%)과 한화시스템(지분율 60%)이 지난해 12월 1억 달러(약 1천400억원)를 투자해 인수를 완료한 필리조선소는 1997년 미 해군의 국영 조선소 부지에 설립돼 미국 대형 상선의 50%를 공급해온 곳이다.

미 동부에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이 곳이 유일하지만, 미국의 조선 산업 쇠락과 함께 선박 건조 능력도 1년에 1∼1.5척으로 뚝 떨어졌다.

발주 물량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 기술 발전과 함께 이뤄져야 할 생산 시설 현대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공간과 시간 활용 측면에서도 효율적이지 못했으며, 인력도 갈수록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선박 건조 작업이 진행되는 4번 독은 벽면 곳곳에 물이 샌 자국이 보이는 등 매우 낡아 보였다.

이 때문에 한화는 인수 후 선박 건조능력 향상을 위한 생산 시스템 개혁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골리앗 크레인 옆 야외 부지에는 새롭게 콘크리트를 타설한 넓은 공간이 보였다.

대형 선박은 대형 블록을 미리 조선소 내 내업공장에서 만들고 이를 독으로 옮겨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조하는데, 이 야외 부지를 내업공장에서 만든 블록을 더 큰 블록으로 조립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조선소측은 소개했다.

이 조선소장은 “600만 달러(약 84억원)를 투자해 골리앗 크레인 밑의 유휴부지를 블록 생산 현장으로 만들고 있다. 오늘 새벽 3시부터 레미콘 150대 정도가 들어와서 콘크리트를 부었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블록을 여기서 더 크게 조립한 뒤 골리앗 크레인이 한 번에 들어서 탑재하게 되면 회전율을 높일 수 있다. 여기서는 부자재 적치장이었는데 한국 조선소의 경우 골리앗 크레인 밑이 가장 비싼 땅이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기존에는 1만t급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데 골리앗 크레인이 80차례 블록을 들어서 탑재해왔다면 이를 40차례로 줄이면 생산능력을 2배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소장은 “600만 달러는 한화가 인수하기 전 이 조선소에서 1년 동안 한 투자 금액과 거의 맞먹는다”며 “그런 투자를 우리가 과감히 해서 생산 물량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조선소 부지 내 유휴부지를 생산시설로 바꾸는 작업뿐 아니라 내업공장의 병목 공정 해소, 골리앗 크레인 운영 효율성 증대, 한국 거제에 있는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의 용접 로봇이나 자동화 설비 등 스마트 야드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이른 시일 안에 한국을 넘어서는 생산력을 지닌 조선소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화그룹 측은 전했다.

생산능력 향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인력 양성도 활발히 이뤄져 조선소 내 ‘트레이닝 아카데미’ 내·외부에서는 견습생들이 용접 훈련에 한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