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유럽, 영국, 캐나다를 포함해 주요국 중앙은행이 본격적으로 통화정책 보조를 맞추게 됐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7∼18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4.75∼5.0%로 0.5%포인트 내렸다.
연준 금리 인하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충격을 막기 위해 긴급 대응에 나섰던 2020년 3월 이후 4년 반 만이다.
연준은 이후 2022년 3월부터 작년 7월까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긴축적 통화정책을 펼쳐서 금리를 20여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
그러다 이제는 물가보다 고용에 방점을 찍고 통화정책 방향을 틀었다.
물가 상승률은 2022년 6월 9.1%까지 치솟았다가 지난 8월엔 2.5%로 3년 6개월 만에 최저로 내려가며 안정되는 추세다.
반면 고용시장에선 7월 실업률이 4.3%로 2년 9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하는 등 예상보다 냉각 속도가 빠른 징후가 나타났다. 8월 일자리 증가 규모도 14만2천명으로 직전 12개월 평균(20만2천명)에 크게 못 미쳤다.
7월 고용지표가 발표된 8월 초에는 금리 인하 실기론이 부각되며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이번 FOMC 전에도 경기침체를 막고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빅컷'(0.5%포인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상당히 힘을 얻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월 역대 최고 수준이던 정책 금리를 0.25%포인트 낮추며 물가에서 고용으로 초점을 옮겼다.
ECB는 12일에도 예금 금리를 연 3.50%로 0.25%포인트 내리는 등 정책 금리를 추가 인하했다.
금융시장에선 ECB가 일단 10월은 건너뛰고 12월에 한 차례 더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금리 결정 다음 날인 13일 헝가리에서 개최된 유로 지역 재무 책임자 회의에서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경우 10월 금리인하를 고려할 의향이 있다”면서도 “다음 회의 때가 돼야 종합적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영국은 8월에 기준 금리를 연 5.0%로 0.25%포인트 내리며 방향을 틀었고, 곧이어 19일 통화정책회의에서 또 인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LSEG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의 9월 금리 인하 확률을 35%로 책정했다고 FT가 17일 전했다. 지난주 20%에서 꽤 높아졌다.
투자은행(IB) 베어드의 임원 로스 야로우는 BOE가 다른 나라의 금리 인하 추세를 따르지 않으면 파운드화가 더 절상되고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첫 금리 인하도 5대 4라는 근소한 차로 겨우 이뤄졌고, 앤드루 베일리 총재 등 BOE 인사들은 이달 금리 인하 관련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는 점은 이달 동결에 무게를 싣게 한다.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7월 5.2%에서 8월 5.6%로 더 높아진 점도 금리인하 속도가 제한될 것이란 전망의 배경이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난 4일 통화정책 회의를 개최하고 기준금리를 연 4.25%로 0.25%포인트 낮췄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6월에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며 2년 3개월 만에 통화정책 방향을 돌리는 등 총 3회 인하했으며, 다음 달에도 추가 조정이 예상된다.
캐나다의 8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로, 2021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오며 빅컷 가능성을 열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말했다.
데스자딘스 증권의 거시전략 책임자인 로이스 멘데스는 투자자 보고서에서 “중립적 통화정책으로 되돌리기 위해 다음 달 금리를 0.5%포인트 낮출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성장 활기가 떨어지며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중앙은행 전망치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상황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스위스는 3월에 서방 국가 중 가장 먼저 금리 인하를 시작했고 6월에 추가 조정했으며 오는 26일에도 인하가 예상된다.
스위스는 프랑화 초강세로 수출 기업들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스웨덴과 뉴질랜드도 금리 인하를 시작했으며, 연내 추가 인하 전망이 나온다.
인도네시아도 18일 3년여 만에 처음으로 깜짝 금리인하를 단행하며 대열에 동참했다.
반면 노르웨이, 호주는 통화정책 전환이 느린 편이고 일본은 방향이 정반대다.
금융시장에선 노르웨이와 호주가 연말께나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은 지난 7월 기준 금리를 0∼0.1%에서 0.25% 정도로 인상하며 3월에 이어 두 번째 인상을 단행했다.
로이터통신이 전문가 5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원이 오는 19∼20일 동결을 예상했고, 54%가 연내 추가 인상을 기대했다.
한국은행은 부동산 시장 상황을 경계하며 금리인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2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한다고 발표하며 물가만 보면 인하 요건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또, 위원 4명이 3개월 내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지난 10일 공개된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집값 상승과 가계대출 증가에 관해 우려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