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의 수장을 ‘반도체 신화의 주역’ 전영현(64)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지난해 반도체 업황 악화로 15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낸 가운데 불확실성이 큰 대내외 환경 속에서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 ‘반도체 신화 주역’ 투입…기술 초격차 집중

삼성전자는 전영현 부회장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에, 전 부회장이 맡고 있던 미래사업기획단장에 기존 DS부문장이었던 경계현 사장을 각각 임명했다고 21일 밝혔다.

통상 삼성전자의 사장단 인사가 12월에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7개월가량 앞당긴 이번 수장 교체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이번 인사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1960년생인 전 신임 DS부문장은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1등 자리를 지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LG반도체 출신으로 1999년 정부가 주도한 반도체 빅딜 당시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삼성의 제의를 받고 자리를 옮겼으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입사해 D램·낸드플래시 개발, 전략 마케팅 업무를 거쳐 2014년부터 메모리사업부장을 역임해 왔다.

2017년 삼성SDI로 자리를 옮겨 5년간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작년 말 인사에서 삼성전자로 ‘귀환’, 신설된 미래사업기획단을 맡아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주력해왔다.

구원투수로 전격 투입된 전 부회장은 DS부문을 이끌며 기술 혁신과 조직의 분위기 쇄신을 통해 반도체 기술 초격차와 미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전망이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 최대 수요처인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 통과 등을 통해 AI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고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주력인 반도체 업황이 부진하며 DS부문에서 연간 14조8천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IT 수요 침체 등의 탓이 컸지만, 최근 인공지능(AI) 시장 확대로 급성장한 HBM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뺏기는 등 차세대 기술 개발이나 시장 선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올해 1분기에는 전방 수요 회복과 메모리 가격 상승 등에 힘입어 2022년 4분기 이후 5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HBM 5세대인 HBM3E 12단 양산 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킨 주역으로 그간 축적된 풍부한 경영노하우를 바탕으로 반도체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내년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전 부회장의 사내이사 및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 경계현, 자진 사퇴 의사 밝혀…미래 먹거리 발굴 집중

삼성전자는 이날 경 사장의 대표이사직 사임으로 한종희·경계현 대표이사 체제에서 한종희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경 사장은 최근 반도체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 마련을 위해 스스로 부문장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부문장 교체와 관련, 함께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부회장)과 협의하고 이사회에도 사전 보고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종전에 맡고 있던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은 그대로 경 사장이 맡는다.

2020년부터 삼성전기 대표이사를 맡아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린 경 사장은 2022년부터 삼성전자 DS부문장을 맡아 반도체 사업을 총괄해 왔으며, 향후 미래사업기획단을 이끌며 미래 먹거리 발굴을 주도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부문장 이하 사업부장 등에 대한 후속 인사는 검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내년 3월 일부 등기 임원의 임기가 만료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향후 조직 개편 과정 등에서 인사 폭이 커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신임 의료기기사업부장 겸 삼성메디슨 대표로 유규태 의료기기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부사장)을 임명했다. 기존에 의료기기사업부를 이끌던 김용관 부사장은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로 자리를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