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미래 교육 전환에 대비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개정했으나 이번에도 해묵은 이념 논쟁을 피해 가지 못했다.

교육부가 정책 연구진 시안에 없었던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추가하고 ‘성 소수자’, ‘성평등’ 용어를 삭제한 데 이어 국가교육위원회는 일부 위원이 퇴장한 채 교육과정을 의결하면서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2일 정부가 확정해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에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포함됐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은 과거 교육과정 개정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논란의 중심이 됐다.

앞서 교육과정 정책연구진 시안에는 ‘민주주의’ 표현만 담겼으나 공청회 등을 거치며 교육부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표현을 추가했다.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넣는 것은 보수 진영의 주장이다.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언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이런 표현이 독재정권 시절 ‘반북’과 동일시됐다는 점을 들어 ‘민주주의’가 더 중립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해왔다.

교육과정 정책 연구진과 진보 단체 등은 교육부와 국교위가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넣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 관련 표현은 교육과정 개정 절차를 밟을수록 보수 색채가 짙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의 경우 정책 연구진이 사용한 ‘성 소수자’ 표현을 교육부가 행정예고안에 ‘성별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라고 수정하고, 도덕 교과의 경우 ‘성평등’ 용어를 ‘성에 대한 편견’으로 바꿨다.

교육부는 이후 행정 예고 기간 접수된 의견을 반영해 고등학교 보건에서 ‘성·생식과 권리’를 ‘성 건강 및 권리’로 추가로 수정했다.

‘생식’ 표현이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강조해 낙태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보수 기독교계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됐다.

국교위 심의 과정에서는 중·고교 보건에 있던 ‘섹슈얼리티’라는 표현도 삭제됐다.

총론 주요 목표에 노동교육이 빠지고 고등학교 한국사에 전근대사 비중이 확대된 데에도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슈마다 이견을 좁히지 못해 9∼10월 정책 연구진 시안이 공개된 공청회부터 지난달 교육부 수정안이 나온 행정예고, 최근 국교위 심의·의결까지 절차를 밟을 때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에서 개최한 공청회 당시에는 보수·진보 단체가 일부 내용의 추가 또는 삭제를 요구하면서 고성과 욕설을 주고받기도 했다.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장인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일부 운영위원의 의결권 행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실천교육교사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으로부터 최근 고발당한 상태다.

지난 14일 국교위 심의과정에서는 진보 진영 위원 3명이 의결에 반발하며 퇴장할 정도로 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교육과정 개정이 논란을 피해 가지 못한 데에는 국교위와 국민소통채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교위는 애초 정권과 관계없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일관된 교육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구성됐다.

그러나 위원 21명 가운데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이 5명에 달해 정부와 여당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교육부가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처음으로 운영한 ‘국민참여소통채널’ 역시 소수의 의견 개진 창구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에 따르면 8월 30일∼9월 13일 온라인으로 접수된 의견을 분석한 결과 총론에 대한 의견 1천394건 중 60%(820건)가 9월 12일과 13일 이틀간 집중적으로 개진됐다.

그중에는 조사나 오타 등을 제외하고 비슷한 문장으로 이뤄진 의견이 몇 초 간격으로 올라오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수가 여러 차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전교조는 개정 교육과정과 관련해 “교육부와 국교위가 함께 나서서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교육과정을 퇴행시키는 현실에 분노한다”며 “교육과정 퇴행을 규탄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