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 1년이 넘도록 확실한 전과를 올리지 못한 러시아가 갈수록 ‘핵 위협’ 수위를 올리고 있어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북한도 김여정 명의의 담화를 통해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하려는 우크라이나를 비난하고 러시아를 지원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발 핵 위협이 한반도 정세와 연계되는 양상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위기감의 발화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촉발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기로 양국이 합의했으며, 7월 1월까지 핵무기 저장시설을 완공할 것”이라고 러시아 매체를 통해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강력한 우방인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라트비아·리투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정학적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야체크 시에비에라는 2일(현지시간) 독일 dpa통신에 폴란드가 나토 차원의 핵 억지에 더 많은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나토 오아나 룬게스쿠 나토 대변인은 푸틴 발언 직후 러시아를 강력 비난했으며 우크라이나는 성명을 통해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푸틴의 발언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전술핵무기를 지목한 점이다. 전술핵무기는 전략핵무기에 비해 사거리나 위력이 상대적으로 짧거나 작지만 제한된 군사적 표적을 제거하는데 주로 사용되며 전황을 뒤집을 상황이 될 때 유용하다.

푸틴은 지난해 2월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과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선제 핵 타격 가능성이나 핵무기 기반시설 건설 등을 거론하며 ‘핵위협’을 해왔지만, 내용적으로 볼때 이번이 가장 구체적인 위협으로 평가된다.

특히 핵무기 운반 체계인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전술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항공기 10대를 벨라루스에 이미 주둔시켰다고 푸틴은 강조했다.

또 푸틴은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해도 러시아가 국제 핵무기 비확산 의무를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토 동맹국들에 핵무기를 배치해왔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현재 나토 회원국인 독일과 벨기에,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에 핵무기를 배치해두고 있다.

실제로 전술핵무기 배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핵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최근 한국 내에서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 방안이 부상하는 이유다.

관건은 미국의 대응이다. 일단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푸틴 대통령 발언 직후(3월26일) 미국 매체에 나와 러시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핵무기를 사용하면 분명히 중대한 선을 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술핵무기라 하더라도 핵무기가 실제 전장에서 사용되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사례라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김여정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지난 1일 ‘무모한 핵 망상은 자멸을 부른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김여정은 “젤렌스키가 미국의 핵무기 반입이요, 자체 핵개발이요 하면서 떠들어대고 있는 것은 자기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라도 어떻게 하나 자기의 잔명을 부지해보려는 매우 위험한 정치적 야욕의 발현”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의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역시 남한을 상대로 노골적인 핵 위협을 가하는 북한의 행보가 묘하게 연계되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